유럽의 역사』, 서울: 까치, 2003, p. 3.
소규모 단위들로 이루어진 유럽의 지형학적 구도는 오랜 세월에 걸쳐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가 탄생하고 발달하는 것을 용이하게 했으며, 더불어 유럽 분열의 중요한 근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유럽 국가들의 지리적 상황은 역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직관적인 표현이 아니라 개념작용과 논리적 판단을 거친 질서 있는 표현이라는 뉘앙스-곧 노리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라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로서 표현하고 표상한다. 그러한 언설은 제도, 낱말, 학문, 이미지, 주의주장, 나아가 식민지의 관료제도나 식민지적 스타일로써 구성된다
유럽에서는 EU(유럽연합)라고 하는 거대한 지역공동체를 토대로 한 새로운 형태의 정치, 경제, 문화질서를 창출하고 있다. 국가 간에 지역공동체를 형성하여 경쟁력 있는 정치, 경제, 문화적 세력을 구축하고 공동체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이러한 추세는 동북아 지역의 국가들에게도 큰 시사점을 던
문화의 맹아
19세기 말 산업사회로의 진보 자체가 강조하던 ‘생산의 윤리’는 ‘소비의 윤리’를 강조하는 것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대형 백화점이 생겨났으며 박람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생산에서 소비로의 전환은 1900년 파리 박람회에서 완성. 로잘린드 윌리엄스는 “지적 즐거움을 소비의
문화를 살펴볼 필요가 이다. 그것은 여러 학자들이 언급하듯이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서 그 만의 특별한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질, 특히 정치에 대해서 살펴봄으로서 러시아가 가지는 문화와 의식, 태도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를 통해 연방제도와 민족문제를 언급하고
유럽인들의 문화와 가치관의 뿌리가 되는 그리스, 로마 문화의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된다. 인간과 자연 세계의 이성적 질서를 탐구하는 그리스 문화는 훗날 게르만족의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사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개인주의적이고 실제적이며 국가질서 확립에 노력한 로마 제국의 문화는 이후 게
유럽은 세계문화에서 늘 중심자적 위치를 고수해왔다. 하지만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는 미국과 소련이 주도하는 냉전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럽인들은 새로운 국제 질서 하에서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한 자신들의 처지를 극복하고 유럽의 독자성과 일체감을 유지하
유럽협조체제'(European Concert)의 부활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유럽통합을 너무 경제적인 관점에 의해서만 바라보는 것은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경제적인 이유가 크다고 할 지라도 서로 다른 전통과 문화를 가진 국가들이 연합한다는 것은 분명 커다란 위험을 내포하고 있고, 어
유럽의 질서 하에 두고자 하였다. 독일을 중립국화하자는 제안을 내놓았으나 서방 연합국과 서독의 초대 수상 아데나워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독일 문제는 1954년 서방 연합국과 서독간의 독일 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전승4강국의 유보권을 인정하는 상태에서 미해결의 과제로 남게 되었다.
1990
유럽은 국제 사회에서 이전보다 커다란 영향력을 지닐 수 있게 되었으며, 미국․일본에 맞서는 경제중심으로 다시 일어서게 되었다. 그런데 유럽 국가들이 통합을 추진할 수 있었고 통합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유럽의 동질성, 즉 문화의 공동체로서의 역사적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유럽은